2024.

블루, 나의 감성의 색

1. 블루, 나의 감성의 색

어떤 계기를 통해 당신 작업의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는 단색조에 이르게 되었는지요?

작가로서의 길에 들어서고자 할때만 하더라도, 단색조의 경향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추상 표현주의적 성격의 형태에 몰두하였고, 색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두렵기도 하였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작업 방식에 대한 확신도, 얼마간 명확한 방법론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렇게 색에 관한 특별한 지식도 어떤 실천의 경험도 없었기에, 나로서는 우선은 가능하고 조금은 순조로울 것이라 여겨졌던, 그리고 점차 색으로 나아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검은 색과 흰색의 대비를 일단 다루어보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보다 강력한 대비(콘트라스트)를 위해 큰 사이즈의 작업을 시도하면서, 이 작품들을 어디서 전시할 수 있을까, 어느 누가 실질적 관심을 보여줄 수 있을까 스스로 질문해 보았습니다. 그 당시 나는 사람들에게 그림을 통해 다가가고 싶었고 소통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색이 무엇일까 묻는 가운데 점차 푸른색에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그 즈음 지난 시간들을 회상해 보게 되었지요. 중학교 시절 학교를 마치면 나는 내가 살던 집 가까이 흐르는 섬진강, 그 강가로 매일처럼 그림을 그리러 갔습니다. 그 시절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게 되면, 소나무 숲을 저 뒤로 하고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주고 있는 다리 옆에 교복을 입고 서있는 저를 보실 수도 있겠지요. 마치 세잔의 풍경이 연상되는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거기 소나무들을 두르고 있는 푸른 기운과 강물의 짙푸른색 그리고 하늘의 푸른빛을 좋아했지요. 하늘의 푸른빛은, 당시 나로서는 힘겨운 시절, 격려의 손길과도 같은 희망의 빛이었습니다. 그렇게 푸른색은 나에게 평온함을 안겨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줄곧 이어온 푸른색에 대한 애착에서 떠나지 못하는 연유라도 있나요?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푸른색만 가지고 작업을 하느냐고 묻곤 하였습니다. 분명 나는 여전히 이 색에 강한 애착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 해에 걸쳐 이어지는 저의 작업을 살펴보시면, 아주 다양한 여러 푸른 색조들을 쓰고 있었음을 아실 수 있을 거예요. 그것은 안트라퀴논(Anthraquinone) 블루를 만나게 되는 날까지였답니다. 무척이나 어둑한 듯 깊은 푸른색을...... 게다가 이 푸른색은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색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클라인(Klein)의 푸른색을 좋아합니다. 저도 많은 다른 화가들처럼 씨엘 블루, 코발트 블루 등을 쓰곤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위한 나의 푸른색을 찾고 싶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과도 같은 안트라퀴논(Anthrquinone) 푸른색을 만났습니다. 나는 그 두터운 밀도가 참 좋아요. 같은 색조의 다른 푸른색들보다 훨씬 짙고 훨씬 강한 것 같아요. 이 색은 이른바 나를 나의 그림 속에 이끌어 데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이 색은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게다가 두 번 세 번 색 위에 색이 겹쳐지면서 놀랍게 달라지는 색이기도 합니다.    


2. 그러면서도 다른 색들을 쓰게 되지는 않나요?

물론입니다. 다른 색들도 시도하였죠. 붉은 색, 녹색, 심지어 노란 색으로도 작업을 하였습니다. 매번 나는 다른 경험들을 향해 나아가는 데서 오는 만족감, 즐거움 그리고 고양되는 느낌을 얻어야 하리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진정으로 이르지는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흡족한 경우는 드물었고, 그렇다 하더라도 잠시. 그것은 한 순간 달아오른 인상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되돌아봅니다. 다른 색조들로 한 작업들을. 그 결과를 나는 살펴봅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내가 안트라퀴논(Anthraquinone) 블루를 통해 나누었던 느낌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3. 코로나로 기간 동안은 그 푸른색을 구하기 어려웠을 텐데...... 

그랬었죠. 한동안 재료 구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두 해 동안은 비교적 비슷한 계열의 푸른색을 가지고 작업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같을 수는 없었습니다. 색의 향기와 색상 자체가 달랐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내 물감 팔레트는 다른 색조들로 그 폭을 넓혀가게 되었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린넨 천위에 이 푸른색만이 줄 수 있는 바로 그 느낌에 새롭게 눈뜨게 된 셈이죠.  

당신 작업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색의 터치들이 보여주는 리듬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리듬은 어디로부터 연유하는 것인지요?

당신이 언급한 리듬은 지금 작업에서 바로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리듬이 없었습니다. 이 리듬은 검은 색과 흰색으로 작업하기 시작할 때 찾아 온 것이라 하겠습니다. 안트라퀴논(Anthraquinone) 푸른색으로 작업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인데, 이 푸른색은 린넨 천이든 광목천이든 화폭의 바탕과 대비를 이루는 데는 안성맞춤입니다. 언제나 자연스럽게 나는 대비를 무척 좋아하는데, 대비가 힘과 밀도를 주게 되는  것 같아요. 리듬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서도 나의 작업 속에 절로 주어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만의 “글쓰기”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의식적으로 그렇게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리듬은 몸짓(제스츄어)에서 비롯하는 것입니까?

몸짓도 아닙니다. 몸짓은 내가 미리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리듬은 어떤 자명한 것처럼 주어집니다. 이러한 효과의 리듬에 이르기 위해서는 동일한 자취를 남기는 그 반복 행위를 낳는 몸짓을 되풀이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몸짓은 나에게 제대로의 통제와 적절한 집중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몸짓의 흔적들을 가까이 살펴보면 많은 주의와 섬세함을 요구하는 점진적 층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리듬은, 이 몸짓의 반복은 당신에게 있어서 일종의 명상과도 다르지 않은 것입니까?

이 말을 입에 올리기에 매우 조심스럽네요. 역설적으로 이 말을 늘 써왔기 때문에 그러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말이 실은 매우 귀한 어떤 것을 일깨우리라는 짐작을 하게 되면서, 알게 모르게 나에게 조금은 친숙하게도 된 말입니다. 말하자면, 그러네요, 나의 작업이 명상 이 말에 이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러네요, 다른 말을 찾아야 할지도(웃음).  

더 많은 반복의 몸짓을 필요로 하는 큰 사이즈의 화폭에 작업을 할 때면, 점차 명상의 숨결에 더 가까워지는 숨결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명상의 형태로 보아야 할 숨결과 공간 위에서의 작업. 매번 캔바스에 그림을 그릴 때마다, 나는 묻습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 나는 가고 있는지, 어디로 나는 가야 하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늘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습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푸른색이 명상에 가장 바르고 옳은 색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당신은 늘 종이 위에 또 크로키 수첩에도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작업들이 당신에게 갖는 가치는 무엇이며, 어떤 길을 열어줍니까? 그 자체가 하나의 작업입니까, 연습입니까, 구상입니까?  

크로키 수첩에 습작을 긁적이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화폭에 옮기기 위한 습작들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작업 방식에 비추어 볼 때 불가능합니다. 그것들은 화폭에 그대로 옮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실마리요, 습작이요, 탐구이며 수련과정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자체로서 완결된 작품으로 보여줄 수도 있을 것도 같네요. 나는 또한 종이 위에 작업하기를 좋아합니다. 물감을 잘 흡수하여 린넨 천과도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당신의 작업이 갖는 단색조에 관하여 이야기하기도 했지요. 이른바 “한국 단색화”라 불리는 단색화 화가들과 관련하여, 같은 세대는 속하지는 않지만, 당신은 자신을 어느 지점에 두고 있는지요.

그들 세대에 속하지는 않지만 나는 단색화 화가들과의 관련성을 느끼고 있답니다. 그들의 작업을 좋아하고 존중합니다. 하지만 나의 블루, 푸른색은 단색화의 계보가 아니라 강물과 푸른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굳이 도움을 준 화가를 말하자면 피에르 술라쥬를 언급하고 싶구요. 오래전부터 그의 작업을 좋아했고, 단색화보다는 오히려 그가 걸었던 길 위에 나를 두고 싶답니다. 이미 말했듯이 나는 검은색과 흰색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많은 화가들은 물성 이른바 마티에르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신도 이 경우에 해당하는가요?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마티에르는 늘 나의 작업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처음 검은 색과 흰색으로 작업할 때는 두터운 마티에르를 사용하였습니다. 색채 작업으로 나아가면서 마티에르는 조금씩 그 두께가 얇아지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나의 화폭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스퀴즈로 화폭의 물감을 긁어 밀어내면서 화폭의 가장자리에 돋보이는 질감과 그리고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색들의 뉘앙스를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연유에서 마티에르와 질감, 아울러  그 가능성이 다양한 수직과 수평의 교차 행위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죠. 

피에르 술라쥬를 언급하였죠. 당신에게 특히 기억에 남는 화가들은 누구입니까? 

내가 아주 좋아하는 세잔의 많은 도록들을 보았고 텍스트를 읽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화가는 피에르 술라쥬입니다. 그의 제스츄어, 그 제스츄어에 따른 표현, 그린다는 행위 그 자체, 화폭의 표면이 주는 깊은 느낌들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가령 어느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당신의 작업을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당신은 무엇을  그립니까 하고 물었을 때,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감성을 깨우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보이는 색과 더불어 오래 작업하면서 나에게 쌓인 그 감성들을 표현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감성의 다양성에 잘 어울리는 일련의 연작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감성에 관한 한 푸른색이 으뜸이기는 하죠. 결국, 전하고 싶은 감성에 나의 숨결을 싣는다고나 할까요. 나의 작업, 그것은 감성입니다. 


앙리 프랑수와 드바이유와의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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